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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M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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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미국에서 석사하고 계실 때 태어나, 만 7살 때 한국에 들어가서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나.
춈스키가 가정한 '완벽한 이중언어자'의 기준에 거의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환경에서 자란 나.

그런데, 왜 daily show를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걸까.
그런데, 왜 언어학 논문을 20번 읽어도 이해가 안 가는 걸까.
그런데, 왜 에세이를 쓰려면 최소한 이틀이 걸리는 걸까.
그런데, 왜 말하기 전에 내 문법이 맞는지 점검하고 입을 여는 걸까.
그런데, 왜 영국 사람들 영어가 들리지가 않는걸까.

결론은, 나의 영어가 mediocre 이기 때문이다.

흑, 어렵게 도달한 결론에 부합해서, WSJ을 구독했다...
매일 신문 한부씩 읽는걸로 영어못하는 죄의식이 사라지기를 바라며...




2012/01/20 02:48 2012/01/20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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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연애를 해온 것 같다. 짦으면 몇 주, 길다면 반년 정도의 휴식기를 제외하곤.
동식물이 지닌 종족번식의 본능에 충실하려한 것도 아닌, 공허함을 종식하려한 것도 아닌,
아마도 내 안의 조잡하고 더러운 찌꺼기를 꺼내게 만드는 연애라는 년의 중독성 때문이리라.

"you already have tons of issues going on" - 듣기 싫지만 결국 매번 들어버리는 이 문장.

달갑지만은 않은 기억의 잔상들이,
수면 위로 올라와 나의 고통과 융합하여 냄새나는 분비물을 분출해내 상대방을 괴롭힐 때... 참. 난감하다.

허나,
이상하게도, 가끔 이렇게 병신짓 하는 내 자신이 싫지만은 않다.

내 안의 분노가 이렇게 한번씩 튀어나와 상대를 괴롭힌 후 다시 침착히 가라 앉을 때마다,
그럴 때마다, 내 안에 겹겹히 쌓였던 두꺼운 껍데기가 한꺼풀 깍여나가는 느낌.

휴우. 그래서, 지금, 결국, 나는, 다시 한번, 나의 현재완료형 상태의 지랄을 합리화시켰다.




more..

2012/01/03 19:52 2012/01/03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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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관계란 건 아무도 모르는 거다"

어렷을 적부터 유달리 이성친구에 집착이 강한 나를 보시며 그렇게 무한히도 반복하셨다.
노력하는 엄마의 귀여운 쇄놰교육 이려니하며 그냥 넘겨 버렸던 이 구절이 지금 왜 이리 가슴에 와닿는지.

2009년 12월 초 부터 지금까지 1년 4개월 남짓한 시간동안 한 사람과 지긋이 사귀고 있는 이 시점.
깨짐의 두려움은 겉잡을 수 없이 증식된다.
내 안 깊숙히 있는 무언가는 이렇게 계속 꿈틀되고 목위까지 기어올라 나를 숨막히게 하고 있다.

한 사람에게 안주 하지 '못'했던 내가 이렇게 머리를 짧게 자르고 두꺼운 안경을 써가면서 나를 절제하며 살고 있다.
정죄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던 습관들이 이제는 내 정체성을 흔들리게 하고 있다.

"얘랑 평생 갈 수 있을까" 같은 참 그지 병신 같은 생각들을 하게 되고
"얘가 없으면 다른 남자 못 만날 것 같아" 라는 유아틱한 발상까지 뇌리를 스친다.

이 세상에 온전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진리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그게 또 현실화 될까 너무 두려운 시점이다.


2011/04/27 15:55 2011/04/2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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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막상 누군가 내게 그게 무엇인지 묻는다면 나는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없다는 거 겠지 그럼.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
오래할 수 있는 것.
의미 있는 것.
하면 행복한 것.

이 다섯가지를 충족시킬만한 나의 길은 무엇일까.
그게 과연 존재할까.

자기 전에 신께 항상 묻는다.
나를 왜 태어나게 했냐고. 무슨 이유로 나를 이렇게 숨쉬게 하는 거냐고.
내가 과연 남에게 해가 아닌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될 수 있겠냐고.


2011/04/15 16:27 2011/04/1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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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정체성. 사춘기 때나 들어볼까한 단어지만
나는 그게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내 담임이었던 최모 교사의 교실에서 깨닫는다.

"___, 써티원 아이스크림 본토발음으로 읽어봐."
용기를 내어 "써티원 아이스크림"을 발음한 후에 곧장 모두가 내게 질투섞인투로 비웃으며 박장대소했던 그 순간.

엄마는 내가 그 날 이후 영어가 쓰여진 티셔츠를 오랫동안 입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내 또래보다 한국어를 못하는 내 자신이 미워서 각종 고전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2학년 때부터 1년에 한번씩 남대문 단골 안경집에서 안경을 맞춰야 할 정도로 눈이 -1.0 씩 나빠졌다.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는 습성이 중학교 때까지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아픔을 독서로 '승화' 시킨 덕에 한국어와 영어는 'mediocre' 수준으로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국제회의통역을 할 정도는 아니고. 두 사회의 일원들과 융화하는데 문제 없을 정도로.

외국에서의 나는 '영어 잘 하는 동양인' 이지만, 한국에 가면 '발음이 꼬이고 미국물 먹은 부러운 애'가 된다.
깊숙한 곳에서 바라보는 나는 절대적인 한국 사람이다.
어릴 적 내가 마음이 많이 아팠을 때 나를 위로해주었던 건 영어로 된 책이 아닌 한국어로 된 책들이었기 때문이다.

신기한 건 이 곳 미국으로 유학오는 학생들은 이런 나의 hybrid한 색깔을 이해하거나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영어만능주의에 미친 사회에 물들어서 나같은 인간을 선망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항상 내가 영어로 (그들이 보기에 유창하게) 대화를 이어갈 때면 자신감없고 주눅 들어 있는 표정들.
영어 좀 하는 게 뭐가 대수라고. 그래봤자 잘 하는 것도 아닌데...

내가 한국말을 당신과 같은 수준으로 하면 또 어떤가.
같이 잘 놀고, 좋은 같이 나누고 즐기면서 재밌게 지내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아무래도 다시 내가 태어난 LA로 가야 할 것 같다.
거긴 워낙에 많은 Korean hybrid들이 존재하니까.

 
2011/04/08 14:42 2011/04/0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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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죽은 것은 친할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처음이다.
2010년 6월 17일 목요일. 그는 왜 죽었을까.
메신저에서 고등학교 친구가 그 아이가 죽었다는 걸 알려주었을 때 난 반신반의했다.


‘아니겠지. 있을 수 없어. 말도 안돼. 아직 스물 넷인데. 벌써. 설마. 아니겠지.’


그를 친구목록에서 지운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그의 홈페이지에 있을 수 많은 애도의 글들을 보지 못 했다.
전화를 받은 그날 밤, 나는 울었다. 그런데 많이는 못 울겠더라. 믿기지 않았으니까.


그는 나의 세 번째 남자친구였다.
일 년 정도 다닌 학교에서 세 명을 사귀었을 때, 가장 마지막으로 사귄 사람이었다.
서로 열일곱 이었지만 그는 나보다 이년 선배였다.
이목구비가 또렷하게 생겼지만 키는 아담한 아이였다.


그의 첫인상은 싸가지 없었지만 알고 보니 병적으로 예의 바랐으며 그 누구보다 소심했다.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서인지 감정의 억압이 가히 굉장했다.
가끔은 그가 위선자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 이중성은 놀라웠다.


대표적인 예로썬, 그가 내게 처음으로 DVD방의 세계에 눈 뜨게 해준 날이다.
“맨인블랙”을 보던 중 자연스레 키스를 했는데 갑자기 나를 딱딱한 가죽소파에 눕히더니
“May I?”라는 버터발린듯 하면서도 잰틀한 질문과 함께 속옷을 올리더니
몇 일간 모유수유 해주지 못한 엄마와 떨어져 지냈던 아기처럼 내 가슴에 찰싹 붙어서 날 혼란스럽게 했다.
끝날 때까지 내 머릿속은 온통 프로이드 책에서 본 내용들로 가득 찼던 게 생각난다.
그 구질닥스러웠던 DVD 방에서 난 생애 처음으로 형용할 수 없는 불쾌감, 죄의식, 그리고 희열의 중간을 느꼈다.


내게 외국에서 학업을 마쳐야하는 상황이 와서 우린 자연스레 헤어졌지만
메신저나 전화로 연락하면 항상 여지를 남겨두려는 같잖은 속셈이 유치해서 언젠가는 내가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난 그게 마지막이 될 줄 절대로 몰랐다.


이렇게 몇 자 적어보니 그는 내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상을 등진 그에게 미안한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내가 그를 사귈 당시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을 만드는 행위에만 충실했으니까.
또한 내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해 줄 인연이 아니었던 거에도 약간 찝찝할 뿐이다.


내게 항상 칭얼거리고 찡찡대고 간접적으로 다시 만나자고 하는 모습이 생생하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똑똑하고, 재능과 꿈 많던 사람이었는데...
사인 따윈 알고 싶지 않다. 원망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저 남은 한(恨)이 있다면 다 풀고 좋은 곳에서 편히 쉬었으면...


그 동안 너무 차갑게 대해서 미안했다. 니가 기억날 때면, 울어줄게.
지환아, 사랑해.


2010/07/20 11:36 2010/07/20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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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끊었는데 목구멍은 왜
아픈거지
여자들이 잘걸린다는 그 갑상선암?
설마
아 또 헬스폴리스 나오셨다

그래도 확실한건 목구녕이 엄청 부으셔서 침삼킬때 아프다는거

작년 연말, 남친이랑 담배 피면서 라디오헤드의 아이언 렁을 들으면서
우리도 저런 폐를 지니고 태어났어야한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10년을 적게 살더라도... 담배 피는게 나은건가
오늘 너무 고프자나.............
어차피 이리 죽고 저리 죽는건 마찬가진데...............

아웅 J가 너무 보고싶다.
올 여름, 시골 여관방에서 에어컨바람 맞으면서 담배피면서 만화책보고 영화보고 섹스얘기하고
뒹굴뒹굴 거리면서 방콕에서의 생활을 만끽하는게 소원이다...


2010/04/28 13:20 2010/04/28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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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거나 하는건 또 아니다.
소심하니까.
4년동안, 이렇게 썩어서... 뭐가 될려나...
대학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씨부룰
2010/04/23 02:58 2010/04/23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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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질투심이 강해 남 잘되는 꼴을 못본다.
그래서 아빠가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넌 전문가가 되어서 화려하게 살아야지, 안그럼 자살해"
부모로써 할말은 아니지만, 일단은 맞는 말이다.
난 자살할꺼다. 성공하지 않을 시엔.
집에서 애 키우고 박봉 남편 올때까지 기다리고 하는 짓은 안할꺼다.
이상하게도! 내겐 출처모를 자신감이 있단 말이다.
난 분명히 성공할꺼라는.
아무것도 아닌 년이, 자신감은 충만하니까 사람들은 에고를 사이즈 다운 시키라고 한다.
초라한 30대를 맞기 싫다.
호텔에서 외식하고 외제차 타는게 성공하는게 아니다.
인정받고 싶다.
많은 사람한테서...
어차피 인류는 서서히 사라질거지만, 나와 동시대에 공존하는 인간들이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어디서 부터 시작해야 하는걸까.
준비를 한다고는 하고 있는데,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난 어디로 가는걸까?

2010/04/09 00:13 2010/04/0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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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일어난다.
힘들다.
배도 아프다. 씨뱅 그냥 정로환으로 버티고 있다.
"몸이 고달프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한다" 를 되내인다.
새벽 새벽 새벽 새벽
오늘 공기가 참 맑았다.
이렇게 일한지 일주일 째,
정확히 9주만 더 일하면, 나는, 자유다.
돈을 갖고 튈꺼다.
홍콩으로...

2010/04/06 00:18 2010/04/06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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